제 2의 독립운동이 필요한 이유
"그 나라 국민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온갖 부가 약탈되는것을
참고 견디게 하려면 머뭇거리는 대중을 레지스탕스에
가담시키지 말고 콜라보 편에 서도록 설득해야한다"
조선을 침략한 일본에게 가장 필요했던것은 협력자 콜라보들이었고
조선에서 기득권을 누리며 살아오던 자들은 나약했던 조선의 왕과 민족을 배신하고
친일파로 변신하여 누구보다 열심히 콜라보의 자리를 채웠습니다
수천년 군주제가 이어져 내려오던 이 땅에 민주주의 라는 말이 들어온건 약 1884년 이었습니다만
친일파로 변신한 기득세력들은 민주주의를 절대 받아들일수가 없었으며 오히려 혐오했습니다
왕이 있어야 하나로 통합되고 기득권을 누리며 편안한 삶을 살수 있다고 믿은 기득 세력들은
일본천왕을 모시는 한이 있더라도 왕을 중심으로 하는 위계화 체제에서 안정적인 기득권,
즉 귀족의 자리와 세습을 유지하고 싶어했습니다
개 돼지만도 못한 2등급 조선 신민들과 평등한 주권을 행사하며 동급으로 처리되는것이
못견디게 싫었고 또한 무엇보다 자신들의 자리를 절대 위협받고 싶지 않았습니다
일본인들과 동등한 1등급 황국 신민이 되기위해서는 일본천황에게 충성하는것이 애국이고
귀족의 정체성이었으며 왕정체제를 절대 포기할수 없는 이유였습니다
약해 빠진 민족, 버러지같은 민중들을 위한답시고 바위에 계란치기 마냥 거대했던
일본제국에게 자신들처럼 굴복하지않고 대항하면서 스스로의 인생을 헌신했던 독립운동가들이
그들의 눈에는 그저 테러리스트 이자 경멸과 조롱의 대상으로 여겨졌던 것이였습니다
이들은 우리 민족 누가 죽든간에 관심이 없는 이기주의자와 기회주의자였고
오로지 자신과 자신의 가족이 잘먹고 잘사는것 외에는 인간에 대한 예의가 없었으며
오직 이들의 관심사는 물질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는 뉴라이트의 역사관으로 자리잡게 됩니다
한편 일제에 저항하는 세력이었던 독립운동가 들은 일본에게 빼앗긴 주권을
망국의 왕 순종이 아닌 민중에게 되돌려주고, 민중이 주인이 되어 주권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임시정부는 임시헌장을 통해 민주 공화제로 선포하고 민중에게 주권이 있다는것을 분명히 했습니다
독립운동의 핵심에는 우리 라는 공동체 의식이 있으며
독립투사들은 공동체를 구하기 위해 나선 정의로운 사람들입니다
핍박받는 민중, 우리 민족 공동체를 위해 싸웠으며 거대하고 막강한 제국의 총칼 앞에서도
차라리 죽을지언정 힘에 부친다고 굴복하거나 못본척 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독립운동은 민주 국가 수립 운동이며 기본적으로 민주화와 결합 되있는것입니다
왕정체제에서 일본에 협조하며 기득권이된 판사, 검사 ,경찰, 총독부 관리였던 엘리트들과
민주국가 수립 독립 운동가의 충돌은 ...
민족 반역자 이자 반민주 세력인 콜라보 vs 민중이 주권을 가진 민주세력의 대결이었습니다
"그를 만나면 직이뿌라(죽여 버려라). 그는 사람이 아니다. 인두껍을 쓴 짐승이다."
- 친일 경찰에게 고문 당했던 이광우 선생님 -
"어떻게 동족의 뼈를 바르고 ,뼈를 뭉개고 , 살을 찢고.고추가루를 들이붓고,
손톱에 대못을 박았던 자들을 어떻게 용서할수 있는가 .
이들을 용서하고서 어떻게 새 나라를 만들수 있는가"
- 반민특위 위원장 김상덕 -
친일파들은 일본인보다 더욱 악랄하게 독립투사들에게 모진 고문과 살해를 실행했습니다
일제 천왕에게 충성과 애국을 다하고, 동족을 배신하고 고문하면서 얻은
자랑스러운 1등급 황국신민의 영원할것만 같았던 삶에도 일본제국이 항복을 하고
갑작스럽게 독립이 되면서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기회주의자 였던 친일파들은 위기를 벗어나기위해 국내 정치기반이 약했던 이승만과 손을 잡고
천황처럼 받들면서 비호와 면죄부를 받게 되었고 처벌이 아닌 해방된 조국의 힘있는 자리로
다시 돌아가 더러운 기득권을 계속 유지할수 있게 됬습니다
독립투사들은 해방된 조국에서 또 다시 친일 고문 경찰에게 체포 되는 수모를 당하기도 하여
결국 김원봉 같은 독립투사는 수모와 분노를 참지못해 월북을 선택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친일파 처단에 앞장섰던 반민특위가 와해되고 친일파 청산이 철저히 실패하면서
" 친일하면 3대가 흥하고 , 독립운동하면 3대가 망한다" 라는 굴욕적인 말들이 돌았습니다
이는 훗날까지 우리 사회 가치관을 흔들어 놓은 결과를 가져왔고
국민이 옳고 그름의 대한 판단 기준을 갖지 못하고 사익에 따라 분열되는
현상을 낳게 되었으며 지금까지도 힘있는 권력자나 엘리트 세력들은
사건자체를 축소, 은폐하고 덮어버리거나 아예 처벌받지 않는 일이
반복적으로 되풀이되는 뼈아픈 역사적 선례를 남기게 됬습니다
친일파들은 이후 또 다시 군부독재 권력에 기대어 독재자를 왕처럼 모시고 유지하면서
이 나라의 기득권 세력으로 구축하게 되었고, 대한민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모든 분야을 장악하며 두고두고 해악을 자행하는 암덩어리로
깊숙히 뿌리내리고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독재체제가 이어지면서
독재체제에 저항하는 사람들에게는 얼마든지 빨갱이 라는 죄목으로 덮어씌워
체포 ,구금 ,폭력을 동원하는 반민주적 , 반인류적인 야만의 시대가 지속되었습니다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 자유를 포기 하고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 민주주의를 파괴하라 "
형식적으로 민주 공화국이었지만 실질적으로는 왕정 독제 체제나 다름 없었습니다
왕과 다름없는 대통령 이었고 그러한 시절에 민주제에 대한 제대로 된 교육을 했을리가 만무했습니다
국민의 자유를 억압하고 멸공만을 외치는 유신독재를 한국식 민주주의라 했고
자유도 없고 민주주의도 없는 군사 독재체제를 자유 민주주의 라고 불렀습니다
이 시기에 학교를 다닌 60대 70대 중 일부는
민주주의 의 개념을 아직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입으로는 자유 민주주의 를 외치지만 냉전이 무너진지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빨갱이 타령을 하면서 과거처럼 반민주적이고 폭압적인 독재자가 나타나
강압적으로 일거에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하고 정책을 결정해주길 바라는
지배받길 원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당시 한국식 민주주의 교육은 독재를 추종하고 복종에 익숙한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메카시즘은 정적이나 체제에 반대하는 사람을 뚜렷한 증거도 없이 공산주의자로 몰아
매장하거나 처벌하려는 경향이나 수법을 뜻합니다
과거엔 북한이 공포와 증오의 대상이었고 메카시즘이 통했었지만 공산주의는 몰락했고
지금 대한민국과 북한의 국력은 비교자체가 무색 할정도로 격차가 커졌습니다
절대적으로 강한 적 그리고 공포와 증오의 대상을 북한에서 중국으로 바꾸고
이 메카시즘을 지금도 이용하려한다는것과 또 여전히 이 수법과 선동이 먹힌다는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미국 성조기를 드는 이유도 일제시대 천왕을 숭배하고 독재시절에 권력자같은
강한자가 자신들의 편에 서주길바라는 동경과 복종의 경험일것입니다
민주주의 의 반대말은 공산주의가 아닌 1인 독재 군주주의 입니다
12.3 어느때와 같이 평화로웠던 저녁 ...
깨끗하게 청산하지 못한 미완의 역사는 또 다시 망령처럼 되살아나
암울했던 과거로 되돌리려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비상계엄이 해제된것은 천운이었고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집에 돌아가지 않고 그 추운날씨에도
국회 담 창살을 붙들고 졸고 있는 시민들을 지켜보면서
볼롬버그 기자는 말했습니다
"아프리카 국가를 제외한 가장 많은 계엄령을 실행했던 국가이지만
처음으로 계엄령을 시민들이 모여 막아낸 나라,
그것도 피 한방울 안흘리고 시민들이 민주주의를 지킨
말도 안되는 기적같은 나라..."
"민주주의 라는 나무는 피를 먹고 자란다 "고 말합니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수 있는가 죽은자가 산자를 구할수 있겠는가" 라는 질문에
우리는 당당하게 답할수 있게 됬습니다.
"어차피 망할 조국이었고 부질없이 저항운동을 하다 헛된 생명들만 희생되느니
차라리 자신들이 나서서 희생을 줄이고자 어쩔수 없었다 "라고 친일파들은 변명합니다
일제의 악착같은 수탈을 나라의 효율화 라 했고 독립운동가를 고문하면서 나라의 안정화 라 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 입니다
정무적 판단 , 국민 통합, 민생과 경제의 효율, 안정화.... 라는 온갖 수식어로 국민의 눈을 흐리게 하고
도넘은 친일 행보와 식민지배의 합리화를 사실상 동조하며 독립투사들을 펌하하고
친일 인물들을 재평가하는 요즘이 국치이고 제 2의 독립운동이 필요한 이유 라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