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6년을 기점으로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변절했는데, '아마기 카츠란'이라는 이름으로 창씨개명을 했으며 당해 말부터 갑자기 교육과 여성 계몽 분야에서 친일 활동에 적극적으로 앞장서기 시작했다. 조선총독부 관제 단체에는 거의 다 참석했고 매일신보에 정신대 참여를 적극 독려하는 글을 수백 편 쓰는가 하면 내선일체 찬양글도 많이 작성했다. 1938년의 윤치호 일기를 보면 윤치호가 도산 안창호 선생의 석방을 위해 애쓰는 것에 대해서 김활란이 분노했다는 대목이 있는데 이것만 봐도 김활란의 변절이 얼마나 철저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