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무장간첩이 민간인을 살해한 사건


북한 무장간첩이 민간인을 살해한 사건

아제르바이젠 0 33 0 0
복사되었습니다!

9444887873_486263_389334725b50070f0ecce7138e9f5265.jpg.webp

(당시 사건을 다룬 기사)


1984년 9월 24일 오후 1시 30분 경 대구 신암동에 위치한 주점인 희민식당에서 여주인인 전갑숙(29)과 여종업원인 강명자(23)가 중국집에서 음식을 시킨 뒤 뒷정리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술집으로 들어온다. 이 남자를 손님으로 본 이들은 메뉴를 물어보는데 그 순간 남자는 품에서 권총을 꺼내 두 사람에게 발사한다. 이 사고로 전갑숙씨와 강명자씨 모두 사망하고 만다.


9444887873_486263_6821e54be0e66d00086771a6cad59d5c.webp

(왼쪽에서 첫번째가 사건 발생 장소인 희민식당)

당시 남자가 사용한 권총은 남파 무장간첩이 사용하는 베이비브라우닝 소형 권총이었으며 벨기에산 소음기가 장착되어있었다. 또한 술집 창문이 선팅지로 선팅되어 있어서 대낮 도심한복판에서 총기 살인사건이 일어났는데도 아무도 이 상황을 눈치채지 못했다

이후 25분이 지난 같은날 1시 55분 두 사람을 살해한 남성은 근처의 미용실인 백합 미용실에 침입했다 그 곳에는 여주인 탁순애씨(24)가 있었으며 남자는 망설임 없이 탁씨의 뒷통수에 총을 한발 발사했다. 이때 탁씨의 비명소리를 듣고 바로 옆 로마 양복점의 사장이자 통장 민방위 대장을 겸직하던 김인기씨(44)는 지인인 이영우(44) 이영문원재씨(43)와 함께 해당 미용실로 갔다


9444887873_486263_cbe220f2e1f5b8080f307d457e6dd592.jpg

(두번째 사건이 일어난 백합 미용실)

갑작스럽게 세 사람이 온것에 당황한 남자 어색한 억양의 서울말로 "내가 누군지 알아? 손들어!"라고 말하며 총을 겨눴다. 이에 남자들은 양팔을 들어보이며 진정시키려 했으며 이 틈에 김인기씨가 남자를 발로 찬 뒤 총이 든 오른 손을 올려 차 총을 떨어트리게 만들었다. 총이 떨어진 남자는 김인기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으며 곧이어 이영우와 문원재가 남자에게 달려들어 구타를 했으며 한바탕 몸싸움이 벌어지게 된다.

(사건 현장인 백합미용실의 내부)

남자는 제압되었고 이영우가 문원재에게 경찰 신고를 요청한 그 순간 남자의 손이 입가에 잠시 닿았으며 그대로 축 하고 늘어졌다. 이후 경찰이 사건 현장에 왔을 때 남자는 이미 숨진 상태였으며 제압 직전 독약 샘플을 먹고 자살한 것으로 확인 되었으며 탁순애씨는 다행히 목숨을 건졌다.

(당시 사망한 남자가 소지했던 물품들)

군과 경찰이 노획한 유류품은 다음과 같았다.

벨기에제 브라우닝 권총 1정

벨기에제 소음기 1개,

실탄 네 발 및 탄창 1개

크리스탈과 판건식 송신기

자폭용 버클이 장착된 벨트 한 개

일반 벨트 한 개

야전삽 1개

일제 SEIKO 손목시계 1개

선글라스 2개

전기면도기 1개

배낭 하나

면장갑 1켤레

손수건 1장

일제 비옷 한 벌

청바지 한 벌

잠바 한 벌

여행용 휴지 1개

머리빗 1개

솔 담배 두 갑

스카치 테이프 하나

열쇠 및 열쇠고리

만원 지폐 1장(만원)

천원 지폐 2장(2천원)

500원짜리 동전 1개

100원짜리 동전 13개

10원짜리 동전 23개

조사 결과 죽은 남자의 나이는 27세 가량이고 키는 174에 둥근 얼굴에 장발을 했으며 남파공작훈련을 받아 몸이 굉장히 탄탄했다. 대구시경이 지문감식을 한 결과 국민들 중 이 간첩과 유사하거나 일치하는 지문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 또한 입고있던 속옷이 오물과 분비물로 더럽혀져 있어서 상당기간 거점을 확보하지 못하고 떠돈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편 유류품을 살펴보던 경찰은 간첩이 소지한 수첩에 대구와 부산이 고향인 여성 3명의 이름과 주소 연락처가 있는 걸 보고 확인한 결과 모두 숨진 강명자의 지인으로 확인되었다. 한편 대구경찰은 숨진 두사람과 중상입은 한 사람의 부모를 불러 딸의 행실을 조사했고 병원에 입원해 있는 탁순애씨의 아버지 탁해군의 도움으로 처음 간첩이 미장원에 난입하였을 당시, 여주인 탁순애 씨는 간첩을 무장강도로 알았으나 간첩은 탁씨에게 금품을 요구하지 않고 바로 권총을 격발했다는 탁순애씨의 증언을 확보하였다

한편 희민식당에서 일하던 임씨는 경찰 조사 과정에서 중상을 입은 탁순애씨와 사망한 전갑숙이 친했다고 진술했으며 탁순애의 국민학교 동창생이던 김홍자는 대간첩 대책본부를 방문해 탁순애가 간첩과 초면이라는 말은 거짓말이고 예전에 해당 미용실에 간첩이 방문한 적이 있다고 진술 했다.

이후 탐문수사 결과 해당 간첩과 비슷한 얼굴의 청년이 백합미용실에서 자주 머리를 잘랐다는 증언을 받았으며 탁씨에게 이 사실을 말하자 낮에 한 번 온적이 있었던 것 같다고 진술을 번복하였다.

한편 경찰은 간첩에게서 노획한 성냥이 북한제가 아닌 희민식당에시 제공하는 성냥임을 파악했으며 간첩이 두 사람을 살해한 현장인 희민식당 내부를 수색해 본 결과 간첩과 강명자가 말다툼을 벌이다 간첩이 먼저 유리 재떨이와 커피잔으로 강명자에게 폭행을 휘두른 다음 바로 권총으로 강명자와 전갑숙을 살해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게다가 간첩이 오래 전 부터 간첩이 희민식당을 자주 방문했다는 증언도 얻게되었다.

한편 6월 28일 신문에서 간첩사실을 안 남자가 경찰에 증언하기로는 사건발생 5일 전인 6월 19일 밤 8시경. 아양교 인근에서 한 젊은이가 20번 버스를 탔으며 버스요금이 얼마냐고 묻자 승객들과 버스기사가 버스요금도 모르냐고 핀잔을 줬으며 남자는 부산에서 와서 모른다고 답을 했으며 버스기사가 부산을 얼마를 받냐고 하자 그 남자는 답을 하지 못했고 버스내 승객에게 신암동 육교가 어딨는지 물은 뒤 신암동 인근에서 황급히 하차했다는 것이다.

이 증언을 들은 경찰은 대규모 병력을 동원해 아양교 인근의 숙박시설과 사창가, 야산을 샅샅이 뒤졌으나 증인이나 증거를 확보하지 못하였다.

끝내 경찰은 사건의 연관점을 찾지 못했고 간첩이 세 여성을 상대로 고정간첩망 육성을 시도하였으나 이를 거부하자 살해한 것으로 결론을 지었다. 결국 사망한 피해자들에게 혐의점이 없다고 발표하며 같은 해 11월 1일 피의자의 사망으로 공소권이 없어 불기소처분해야 한다는 의견을 달아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검찰은 12월 6일 불기소 결정했다. 범인은 행려사망자로 취급돼 대구시에 인계됐고 이후 대구시립공동묘지에 매장됐다.

현재까지도 남자가 왜 한국에 침투했는지 왜 정치계 인사가 아닌 민간인을 사살했는지 그 세 여성과 탁순애, 식당의 여주인 전갑숙, 간첩과의 관계는 어떠했는지는 아직도 미스터리다.

0 Comments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