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강국 한국이 '반도체 무역' 적자인 이유"


"반도체 강국 한국이 '반도체 무역' 적자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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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무역의 숨겨진 진실


-크리스 밀러 터프츠대 교수

https://www.aei.org/wp-content/uploads/2025/08/How-Does-Semiconductor-Trade-Work.pdf?x850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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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반도체 강국인 한국이 미국에 수출하는 것보다 더 많은 반도체를 수입한다는 사실은 언뜻 이상하게 들린다. 반도체 공급망은 그만큼 이해하기 힘든 복잡한 구조를 가졌다. 미국이 한국과의 반도체 무역에서 흑자를 보고, 대만과는 균형을 맞추는 현상도 마찬가지다. 최근 거론되는 반도체 관세의 영향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먼저 오늘날 반도체 무역이 실제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들여다봐야 한다.

핵심은 무역 데이터의 ‘착시 효과’에 있다. 무역 통계와 관세는 국경을 넘는 ‘완제품’을 기준으로 집계된다.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들어온 자동차는 그저 ‘자동차’일 뿐, 그 안에 들어간 수많은 부품은 따로 계산하지 않는다. 중국에서 수입된 아이폰 역시 ‘휴대폰’으로 기록될 뿐, 그 안에 담긴 대만산 칩, 한국산 스크린, 일본산 카메라 등은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

이러한 통계 방식은 반도체 무역의 실상을 왜곡한다. 무역 데이터상 반도체는 주로 중국이나 베트남처럼 전자기기를 최종 조립하는 국가로 향한다. 이들 국가는 수입한 반도체를 스마트폰이나 컴퓨터에 넣어 완제품으로 만들어 다시 수출한다. 결국 통계에는 ‘휴대폰’과 ‘컴퓨터’ 수출만 남고, 그 안에 들어간 핵심 부품인 반도체는 사라지는 셈이다.

이 때문에 미국이 실제로 소비하는 반도체의 상당수는 공식 수입 데이터에 잡히지 않는다. 2024년 전 세계 반도체 매출은 6,270억 달러(약 878조 원)로, 이 중 25%인 1,560억 달러(약 218조 원)를 미국이 소비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미국 내 생산량은 전 세계의 10% 수준인 680억 달러(약 95조 원)에 그친다. 그런데 공식적인 칩 수입액은 고작 400억 달러(약 56조 원)에 불과하다. 계산해 보면, 약 500억 달러(약 70조 원)어치의 반도체가 다른 제품에 숨어 미국으로 들어오는 ‘숨겨진 수입’인 셈이다.

미국은 전 세계 GDP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만큼, 반도체 소비량도 그와 비슷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생산량 10%를 제외하면, 약 15%의 반도체를 순수입해야 수요를 맞출 수 있다. 하지만 공식 수입량은 전 세계의 3%에 불과하다. 나머지 10%가 넘는 반도체는 바로 스마트폰, 자동차, 식기세척기 같은 완제품에 내장된 상태로 수입되는 것이다.

미국의 칩 수입 통계를 보면 흥미로운 점이 또 있다. 세계 최대 반도체 생산국인 한국, 대만, 중국으로부터의 수입은 매우 적다. 오히려 칩을 거의 생산하지 않는 말레이시아, 멕시코, 베트남 등이 주요 수입 상대국으로 나타난다.

특히 한국과의 무역을 보면, 미국은 2023년에 10억 달러(약 1조 4000억 원) 미만의 칩을 수입한 반면, 20억 달러(약 2조 8000억 원) 이상을 한국에 수출했다. 세계적인 반도체 생산국을 상대로 미국이 오히려 무역 흑자를 보는 이 역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해답은 ‘패키징’ 공정에 있다. 패키징은 완성된 실리콘 칩을 외부 충격에서 보호하고 다른 부품과 연결될 수 있도록 포장하는 후(後)공정이다. 칩 제조 자체보다 기술 장벽은 낮지만 노동력이 많이 필요해, 주로 대만, 중국, 동남아시아에서 이루어진다. 즉, 미국 기업이 자국에서 생산한 고부가가치 칩을 인건비가 저렴한 아시아 국가로 보내 패키징한 뒤, 다시 미국으로 들여오는 구조다. 말레이시아나 멕시코가 미국의 주요 칩 수입국인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이들 국가는 미국산 칩의 ‘포장 공장’ 역할을 하는 셈이다.

이러한 구조는 한국과 대만의 무역 패턴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한국이 생산한 칩의 최대 수출국은 중국과 베트남이다. 이들 국가에 있는 삼성전자 등의 공장에서 칩이 스마트폰에 탑재된 후 전 세계로 팔려나간다. 최종 소비 시장인 미국이나 유럽이 한국의 칩 수출 통계에 거의 등장하지 않는 이유다.

이러한 반도체 무역의 실상은 향후 미국의 관세 정책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첫째, 공식적인 칩 수입액 400억 달러(약 56조 원)에만 초점을 맞춘 관세 정책은 문제의 본질을 놓치게 된다. 미국이 소비하는 외국산 반도체의 대부분을 간과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둘째, 현재 수입되는 칩의 상당수는 사실 ‘미국산의 귀환’이다. 미국에서 만든 칩을 해외에서 패키징만 해서 다시 들여오는 것이므로, 여기에 관세를 부과하는 것은 자국 제조업체에 벌금을 물리는 것과 같다.

셋째, 수입된 칩은 미국 내에서 자동차, 의료기기, 항공우주 장비 등 최종 제품 생산에 투입된다. 칩 수입 관세는 결국 이들 미국 제조업의 원가 부담을 높여 경쟁력을 약화시킬 것이다.

마지막으로, 만약 중국의 불공정 무역 관행을 바로잡는 것이 목표라면, 칩 자체에만 관세를 부과해서는 효과가 미미하다. 중국산 스마트폰이나 컴퓨터에 내장된 칩의 가치를 따져 관세를 매기는 방식을 고려해야 한다. 다만 이러한 접근은 중국처럼 명백한 무역 장벽이 있는 국가에 한정해야 한다. 한국, 일본, 대만 등 공정한 무역을 하는 국가들까지 포함하는 광범위한 관세는 오히려 미국 제조업에 부담만 가중시키고 무역 왜곡의 핵심을 비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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